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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은 어떤 기분일까요? 노벨상 수상자 팀 헌트(Tim Hunt) 박사 인터뷰

클라린다 세레조 | 2015년10월22일 | 조회수 33,575
시리즈 기사 2015 노벨상
노벨상 수상은 어떤 기분일까요? - 노벨상 수상자 팀 헌트(Tim Hunt) 박사 인터뷰 .
Dr. Tim Hunt, Nobel Laureate

노벨상 수상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를 만나는 경험은 언제나 특별합니다. 팀 헌트 (Tim Hunt) 박사님을 소개받고 이 인터뷰를 위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저는 긴장했고, 격식을 갖춘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헌트 박사님의 재미있는 일화, 재치 있는 말솜씨, 그리고 친근한 농담 덕분에 곧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박사님은 노벨상을 받은 경험은 물론 전도유망한 연구자들을 위한 조언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팀 헌트 박사는 세포주기 조절 연구로 2001년 리 하트웰 (Lee Hartwell) 박사, 폴 너스 (Paul Nurse) 박사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과학자입니다. 팀 헌트 박사는 세포 분열을 비롯한 세포주기 조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사이클린(cyclin)을 발견했습니다. 그전에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합성 조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오랫동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헌트 박사는 Imperial Cancer Research Fund (현재 영국 암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하다 얼마 전 퇴임했습니다.

헌트 박사님. 우선 노벨상 수상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노벨상 수상 후보는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수상 후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비밀에 부쳐지는데요, 노벨상 수상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박사님의 반응이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정말 엄청나게 깜짝 놀랐습니다! 비 오는 월요일 아침 10시경이었어요. 제 오피스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의 최신 연구결과를 살펴보는 중이었고, 다른 연구원은 커피를 가지러 잠깐 자리를 떠난 참이었지요. 전화벨이 울리더니 스웨덴 악센트를 쓰는 어떤 남자 목소리가 “저는 노벨 위원회 서기 Hans Jörnvall 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노벨상을 받으셨습니다.”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대답했죠. “아 그래요?” 그러자 상대는 “예, 리 하트웰, 폴 너스와 공동수상입니다.” 하더군요. 리 하트웰, 폴 너스의 연구는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었기에 두 사람의 수상 사실은 놀랍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이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상대가 이렇게 덧붙이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앞으로 20분간은 아무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그때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으니까요.” 그때가 10시 10분이었습니다. 상대방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혹시 리 하트웰 박사의 집 전화번호를 아십니까? 저희 측에서 연락처를 찾지 못해서요.” 그래서 저도 대답했지요. “모릅니다만 National Academy Directory에서 찾아보시면 될 겁니다.” 결국, 노벨 위원회가 리 하트웰 박사의 연락처를 어떻게 찾은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연구원이 커피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서 이 소식을 알리고 싶어 안달복달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10시 30분이 되기 전이었으니까요! 저는 당시에 제 상사였던 폴 너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비서가 받아 그분은 회의 참석 중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아직 비서는 이 소식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만 남겨 두었습니다. 10시 30분경 폴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기에, 저는 물었지요. “폴, 이게 진짜일까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팀. 회의 참석 중에 비슷한 메시지가 제 음성 사서함에 남겨져 있긴 했는데 전 그냥 무시했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게 어때요?” 그래서 제가 구글에 “노벨”을 검색했더니 정말로 “하트웰, 헌트, 너스” 라고 수상자가 발표되어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다음에는 어쩐지 불편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으니까요. 재미있게도, 수상자 발표가 있고 몇 주 뒤 폴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팀, 지난 주말은 정말 지독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전 혼자가 아니었던 겁니다! 노벨상을 받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들면서 결국은 “어떻게 내가 노벨상을 받은 거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나의 경력을 되돌아보기도 하고요. 기존 노벨상 수상자들의 자서전을 읽어 보면, 이런 반응이 상당히 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상식은 어땠습니까?

시상식 역시 놀라웠습니다. 시상식의 부대행사가 일주일을 가더군요. 파티, 일정, 인터뷰, 이벤트가 아주 많았습니다. 수상자에게는 시상식 기간 내내 도움을 주는 수행원(attaché)이 한 사람씩 배정됩니다. 저를 담당한 수행원은 아주 젊은 스웨덴 여성으로 실제로 스웨덴 외교부에서 가장 젊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수행원은 제게 필요한 모든 사항이 담긴 6인치 두께의 서류 뭉치를 가지고 다녔지요. 일주일 내내 수상자들은 왕족 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상식 예행연습도 있었습니다. 한 손으로 스웨덴 국왕과 악수를 하고 다른 손으로 수상 증서를 받는 법까지도 다 알려준답니다. 진짜 시상식은 트럼펫이 울려 퍼지는 아주 웅장한 행사였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도 하나 있습니다.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히스로 공항 라운지를 이용하러 갔습니다. 데스크에 있던 여성이 티켓을 보더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라운지가 꽉 차서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했습니다. “오전 9시에 어떻게 라운지가 꽉 찰 수가 있습니까!” 했지만 저의 편의를 봐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는 몸을 꼿꼿이 세운 뒤 그녀에게 제 항공권은 노벨 재단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원하던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갑자기 그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제 요구를 받아들였고, 꽉 찼다던 라운지에 갑자기 자리가 생긴 데다가, 갑자기 친절해지더군요. 스톡홀름에 도착한 뒤로는 Hans Jörnvall과 수행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VIP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제일 우스웠던 것은 제가 스톡홀름에서 다시 히스로 공항으로 돌아오자마자 귀빈 대접이 바로 끝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장기 주차장으로 가는 버스를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지요.

팀 헌트(Tim Hunt) 박사 인터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메달을 실제로 받아서 손에 쥐기 전까지는 혹시 노벨 위원회에서 자신들이 실수했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또 스웨덴 국왕이 “안타깝지만, 수상자는 팀 헌트라는 동명이인입니다!”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아주 훌륭한 업적을 지닌 두 명의 동료와 공동 수상이라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들이 감사 결의(votes of thanks)를 하는 동안 그냥 뒤에 앉아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또 하나 좋았던 것은 그 해가 노벨상 100주년이라서 생존한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식에 초대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관심이 저희가 아닌 그쪽으로 쏠렸기에 긴장이 좀 풀렸지요. 그래도 분명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고, 아직도 제가 노벨상 수상자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저에게 존경심을 표하기 때문에 익숙해지기는 합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로 박사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도 영향이 있었나요?

참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참석할 파티도 많았고, 초대받은 자리도 많았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나누려는 사람이 많았기에 아주 신이 났지요. 그런데 서서히 노벨상 수상자의 삶에 적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British Airways에서 저에게 골드카드를 발급했을 때는 놀랐습니다. 갑자기 저는 비행기에 탈 때 뒷자리가 아니라 맨 앞에 앉게 되고, 머무는 호텔도 큰 방을 가진 고급 호텔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사인을 부탁하거나, 같이 셀피(selfie)를 찍자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신기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지지요.
노벨상을 받고 나서 인생은 갑자기 엄청나게 바빠졌습니다. 그러다 가끔 다행히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시간이 나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저는 일본에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의 펠로우십(fellowship)을 받았고 그래서 가족 모두가 일본의 회의에 함께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다가, 강연 요청을 받고 스페인 빌바오까지 함께 갔지요. 요즘은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현재 저는 은퇴했지만 제 아내는 여전히 일하고, 우리 딸들은 학교에 다닙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여행할 수는 없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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