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과 의학박사(MD) 논문을 제출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방글라데시 치타공(Chittagong)에 있는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대학은 2001년부터 의과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저는 2005년에 입학했습니다. 당시의 MD 과정은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교육 시스템과 인프라가 아직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MD 학위를 취득하는 데 보통 5년이 걸렸으며, 마지막 2년은 연구를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지도교수의 지도가 필요한 시기죠. 하지만 제가 MD 과정을 시작했을 때는 문헌 조사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지도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완성한 학생에게 20,000타카(한화 약 23만 원)가 지급될 뿐이었죠. 2006년부터 2014년까지는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재정적 지원이 전무했으며, 2019년 기준으로는 일부 금전적 지원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지도교수들도 재정 지원을 받지 못했던 탓에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비교적 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작성한 논문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 논문은 치타공 지역 농촌 여성의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에 관한 것이었는데, 2년 안에 작성해야 할 논문을 마치는 데 총 4년이 걸렸습니다.
가장 먼저,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문헌 조사를 해야 했습니다. 제 지도교수님은 연구 프로토콜을 준비하고 그것을 윤리 심사 위원회(ERB)에 승인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셨죠. 프로토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지도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도교수님은 프로토콜에 서명해 주셨고, ERB의 승인은 금방 받았습니다.
그 다음, 연구에 필요한 휴대용 폐활량계가 필요했는데 당시에 60,000타카 정도 했습니다. 저는 직장이 없었고 대학에서도 연구생에게 급여를 지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설 연구실에 연락하여 후원을 요청했죠. 연구실 책임자는 제가 장비 비용의 절반을 부담한다는 계약을 체결하면 후원해 주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연구실이 나머지 절반을 부담하고 연구가 종료되면 장비는 연구실 소유가 되는 계약이었습니다. 계약서에 사인했고 장비를 구매했습니다.
데이터 수집을 하려면 몇몇 마을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MD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의료 기술 연구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제게는 연구소에 속한 치타공의 여러 지역 출신 학생들의 연락처가 있었습니다. 필요한 사항에 따라 저는 특정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약속을 잡은 뒤 그들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소정의 사례도 잊지 않았죠. 이렇게 제 네트워크에 속한 학생들의 도움을 통해 치타공의 6개 구역에서 25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데이터를 엮어 분석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데이터 분석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통계 전공자를 찾아 SPSS(통계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며 5,000타카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의료 통계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므로 많은 부분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결국 데이터는 스스로 분석해야 했죠. 지도교수님에게 분석한 데이터를 보여드리자 논문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논문을 쓰기 시작하자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참고 문헌의 전문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거죠.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부분도 유용했지만, 논의 부분을 작성하려면 유료에 해당하는 부분도 필요했습니다. 결제를 위해서는 이중 통화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가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카드를 마련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죠. 10편의 참고 문헌을 구매하는 데 총 400달러를 지출했습니다.
드디어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완성은 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은 빠르게 서명해 주셨고, 지금도 이 부분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논문 디펜스(defense)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제 논문은 제 지도교수님과 해당 분야에 정통한 세 명의 연구자들이 평가했습니다. 무척 긴장되더군요. 심사자들은 제 논문에서 빈약한 부분을 다수 찾아냈는데, 특히 방법론, 데이터 분석(특히 로지스틱 회귀), 논의 부분에서 다수의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논문 디펜스에 실패했고, 수정한 다음 다시 시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은 수정사항을 반영해서 다음에는 더 잘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죠.
논문 디펜스에 처참하게 실패한 뒤, 저는 의료 분야의 통계 지식을 지닌 데이터 분석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제가 있던 도시에서는 전문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데이터 분석, 특히 SPSS를 다루는 온라인 강좌를 검색하다가 인도 케랄라(Kerala)에 있는 센터에서 5일 과정의 SPSS 강의를 발견했습니다. 센터에 연락했더니 등록하려면 25,000루피(한화 약 40만 원)를 지불해야 한다더군요. 일단 강좌에는 등록했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인도로 적법하게 송금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후 인도에 방문하기 위해 연구 및 교육 카테고리의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비자 신청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는 데이터 센터에서 발급한 서류를 제출했는데, 인도 대사관은 해당 데이터 센터가 생소한 곳이라는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부했습니다. 아마 사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겠죠.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했습니다.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인도에 가야 해. 이미 25,000루피도 냈는 걸.” 이번에는 관광 비자를 신청했고,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인도를 가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했죠. 한 친구가 방글라데시에서 필라리아병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치료에 성공하지 못한 이 환자는 추가 상담을 받기 위해 인도 케랄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서로 합의 하에 제가 이 환자와 동반하는 대신 환자측에서 제 경비를 부담해주기로 했죠!
케랄라에 도착한 후 5일간 SPSS를 배웠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었죠. 더불어 제가 동반한 환자를 위해 케랄라의 성형외과의와 상담도 했습니다. 이 환자는 케랄라에 와서야 본인이 필라리아병이 아니라 밀로이병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후, 논문을 수정한 다음 분석을 마쳤고, 아주 큰 도움을 주셨던 심사자 한 분에게 초안을 제출했습니다. 그 분은 다카에 계셨고 저는 치타공에 있었는데, 이동에는 기차로 8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죠. 저는 이분과 다섯 차례의 상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제가 다시 논문 디펜스를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주셨죠.
지도교수님이 논문에 다시 서명해 주셨고, 저는 학교에 논문을 제출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자신을 갖고 논문을 발푷했습니다. 성공적으로 통과한 저는 드디어 MD 학위를 얻었습니다! 지도교수님과 다카에 계신 심사자님,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감수한 제 아내에게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논문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은 정말 많은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포기하면 안 된다는, 목표에 닿아야 한다는 믿음이 었었던 것 같습니다. 의지가 있다면 길은 반드시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배웠죠. 이제 저는 박사 과정에서 배운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모두 활용해 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상황을 이들은 겪지 않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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