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 가 보셨나요? 동시에 진행되는 세션들로 꽉 찬 회의장이 줄줄이 있고, 복도에는 포스터 수백 장이 걸려 있습니다. 오가는 사람은 수천 명이나 되지요. 박사과정생에게 생애 처음 방문하는 학회는 설레는 경험인 동시에 정신없이 압도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회를 최대한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요?
학회에서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라면
많은 젊은 연구자가 학회에서 마치 투명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물론 배우는 건 많겠지만, 과연 누가 말을 걸어 줄까요? 생각해 보면 연구자 중에는 내향적인 사람도 많고 말이죠! 커리어 초반이라면 선배들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을 것 같아 위축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에 불과하다면 네트워킹을 위해 한 걸음 더 노력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 노력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제 경험담과 함께 학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인사이트와 팁을 나누고자 합니다.
나의 첫 학회 이야기
먼저 제 이야기부터 해 보죠. 저는 제 생애 첫 학회, 플로리다에서 열린 화학감각과학협회(Association for Chemosensory Sciences) 학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준비에만 여섯 달 넘게 걸렸기 때문이죠. 실험을 마치고, 초록을 쓰고, 초록이 채택되고, 등록해서 참석 계획을 세우고, 포스터를 만들어 인쇄한 다음 학회장까지 들고 가기까지···. 수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드디어 학회에 갈 시간이 왔지요!
지도교수님은 포스터 발표 때 기밀 정보는 절대 공유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셨습니다. 하지만 학회는 새로운 인맥을 쌓기에 좋은 자리라는 말씀도 하셨죠. 포스터를 보러 오는 시니어 교수들은 같은 분야일 가능성이 높고, 나중에 내 논문과 연구비 신청서를 심사할 사람도 바로 그들이라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첫 학회였던 데다, 화학감각과학이라는 아주 전문적인 분야의 학회였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후각과 미각을 연구했고, 식음료 업계, 향수 연구소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역시 저를 주눅 들게 했습니다. 저는 분자생물학 전공이었고, 제 발표 주제는 후각 조직을 생검해 발견한 바이오마커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후각과 미각 자체를 연구한 게 아니라, 후각을 질병 예측을 위한 진단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죠. 그렇다면 제 연구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과 어떻게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요?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라 따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인맥을 쌓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다행히 학회 규모가 작았던 덕분에 지도교수님이 늘 말씀하시던 “상어 떼 속에 던져지기” 전에 학회라는 환경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소규모 학회에서 네트워킹 하는 법
규모가 작은 학회라면 학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미리 준비해 보세요.
1. 포스터를 A4 한 장 크기의 컬러 인쇄물로 준비해 포스터 보드에 붙여 두면 관심 있는 사람이 한 부씩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인쇄물에는 연락처를 넣어 두세요.
2. 포스터에 연구 데이터, 보충 자료, 연락처로 연결되는 QR 코드를 넣으세요. 간단하면서도 학회가 끝난 뒤에도 네트워킹을 이어 가기 쉬워집니다.
3. 포스터 발표 없이 참석만 한다면,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한 번 해 보세요.
4. 강연이 끝난 뒤 연사에게 다가가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나 배운 점을 이야기해 보세요.
5. 스피드 멘토링이나 신진 연구자 세션처럼 좀 더 편안한 분위기의 네트워킹 행사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6. 실무 역량을 키우는 사전 워크숍에 참석해 보세요. 좀 더 상호작용이 활발한 환경에서 만나는 만큼 본 학회가 시작하기 전에 많은 사람과 안면을 틀 수 있습니다.
대규모 학회와 소규모 학회
다시 제 박사과정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도교수님은 꽤 보수적인 분이었습니다. 대규모 학회에 여러 번 다녀 보신 교수님은 그런 자리에 오는 사람들이 남의 연구 데이터와 아이디어를 얻어 가져 한다고 여기셨죠. 심지어 내가 실험을 끝내기도 전에 그 실험을 먼저 끝내 버릴 수도 있다고도 말이죠. 포스터나 초록은 늘 미발표 데이터이고, 이미 논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라면 학회에서 채택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세부 사항은 빼고 표면적인 정보만 공유해야 하는 게 참 까다로웠습니다. 하지만 신진 연구자로서 이렇게 비밀을 많이 지키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은 시간을 두고 배워 나갔습니다. 지도교수님은 더 큰 학회인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는 박사과정생이 가기에는 맞지 않다고 보셨습니다. 그 속에서 길을 잃을 거라고요. 주변 연구실 사람들은 참석자가 3만 명이 넘는 이 거대한 연례 학회에 매년 가는데, 저만 한 번도 가 보지 못해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교수님의 생각을 이해합니다. 전략 없이 그렇게 큰 학회에 갔다면 압도당하고 말았을지도 모르니까요.
대규모 학회에서 네트워킹 하는 법
규모가 큰 학회라면 다음과 같이 준비해 학회를 최대한 활용해 보세요.
1. 대규모 학회에서는 보통 여러 세션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가장 관심 있는 세션을 골아 앞쪽 줄에 앉아 보세요.
2. 소규모 라운드테이블, 워크숍, 멘토링 세션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이런 자리에는 꼭 몇 번 참석해 보고, 적극적으로 발언하세요.
3. 지도교수와 함께 학회에 갔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교수님이 직접 네트워킹을 하면서 사람들을 내 포스터로 보내 줄 수도 있습니다.
4. 대규모 학회에서는 누군가 나를 눈여겨볼지 알기 무척 어렵습니다. 눈에 띌 기회를 직접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구두(oral) 발표나 포스터 경연이 있다면 선정되도록 도전해 보세요.
5. 다른 사람의 포스터를 둘러보세요. 격식 없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6. 기회가 된다면 학회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보세요. 대규모 학회 중에는 인식 개선 걷기 행사, 어린이 체험 행사, 대중 강연 등 학회와 연계한 아웃리치 활동을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더 편안한 (때로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다른 연구자들과 가까이 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주최 측에 미리 연락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학회에서 존재감을 남기기 위한 팁
박사과정생으로서 학회에서 투명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다음 전략을 한 번 활용해 보세요. 아래의 전략들을 실천하면 학회에서 네트워킹 기회를 넓히고 의미 있는 관계를 쌓을 수 있습니다.
철저히 준비하기
내 연구를 잘 이해하고 발표를 연습하세요. 학회 프로그램을 미리 살펴보고 나만의 일정표를 짜 두세요. 효과적인 학회 네트워킹은 행사 2주 전부터 시작됩니다. 프로그램을 꼼꼼히 읽고 내 연구와 직접 관련된 연구자를 몇 명 골라 보세요. 그들의 연구를 읽고, 내 연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 본 다음 물어볼 만한 흥미로운 질문을 몇 가지 준비하세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몇 명 정해 학회 한 달쯤 전에 자기소개 이메일을 보내고, 커피 브레이크 중에 잠깐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미리 약속을 잡는다는 건 여럿이 모인 자리가 아니라 일대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을 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박사과정생이라고 밝히면 대부분 기꺼이 자신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해 줄 겁니다.
90초 자기소개 준비해 가기
상대에 따라 어떤 이야기를 할지 준비하고, 소리 내어 자기소개를 연습하세요. 누군가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물을 때, 상대가 집중해서 들어 주는 시간은 보통 90초뿐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할지 철저히 준비해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구에 초점을 맞추세요. 상대의 흥미를 끌고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자기소개는 이런 흐름으로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1. 나는 누구인가?
2.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3. 나만의 접근법은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기
커피 브레이크에 발표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만찬 같은 친목 행사에서 다른 참석자들과 교류하세요. 환영 리셉션도 좋은 기회입니다. 같은 연구실 동료 곁에만 머물지 말고, 이런 행사마다 여러 사람과 대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세요. 모르는 사람 옆에 앉아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보세요.
후속 연락하기
학회가 끝나고 48시간 안에 짧은 후속 메일을 보내 학회에서 맺은 인연을 다져 두세요. 그러면 상대가 나를 쉽게 잊지 않을 테고, 학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시 꺼내거나 새로운 제안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 연구실을 방문해 기법을 배우거나, 공동 연구를 하거나,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얻는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지요.
마치며
가장 탄탄한 인맥을 쌓는 사람은 가장 외향적인 학생이 아니라 가장 꾸준한 학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학회를 최대한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일부일 뿐입니다. 학회는 배움의 자리입니다. 사실과 데이터만이 아니라 오래가는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죠. 학회가 끝난 뒤에도 그곳에서 만난 연구자들과 꾸준히 교류하세요. 적절한 기회가 있다면 그들의 논문을 인용하고, 그들의 프리프린트를 공유하거나 의견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시니어 교수들도 이 방법을 씁니다. 새 논문을 발표하면 가장 관련이 깊은 몇몇 연구자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거죠. 이렇듯 간단하지만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면 학회가 끝나고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연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신뢰와 존중,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따라옵니다.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박사과정생이 국제 학회에 참석하는 이유 중에서 연구 발표는 일부일 뿐입니다. 나머지 노력은 앞으로 박사후연구원 자리, 공동 연구비 수주, 교수 추천서로 이어질 전문가 인맥을 쌓는 데 쏟아야 합니다. 학회로 떠나기 훨씬 전부터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철저히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여 학회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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