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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대학원에서의 기억

게스트 저자 | 2023년4월17일 | 조회수 597
시리즈 기사 연구자 스토리
트랜스젠더, 대학원에서의 기억

* [편집자 주] 이 글을 필자의 요청으로 익명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원에 입학을 후에야 비로소 트랜스젠더로, 논바이너리로 정체화를 하고, 조교비와 장학금을 긁어 모아 의료적인 트랜지션을 진행하였습니다. 때문에 대학원 생활의 절반 가량은 꽤나 빈곤했습니다. 바꿀 때가 한참은 지난 구형 휴대전화를 최저요금제로 가며, 식비를 아끼고 취미를 없애가며 극단적으로 허리를 졸라맨 생활을 몇 년 간 유지했습니다. 기간 동안은 거의 학교에 살면서 내내 공부만 기억뿐입니다. 덕분에 기간에는 좋은 실력을 보여 기대주로 꼽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앞서서 상도 타오고, 인정받아 해외도 다녀오고요.

 

커밍아웃을 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없어 하지 않은 모든 트랜지션 과정을 밟았습니다. 재활에 한참이 걸리는 수술마저도, 다른 수술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받고 왔을 정도였습니다. 역시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던 부모님께는 학교에서 해외로 잠시 연구를 나갔다 온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트랜스젠더로 사는 과정에는 거짓말만 늘어갔습니다. 수술을 하고 원격으로 기말고사 채점을 했을 때의 통증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앉아있으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

 

비밀을 품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 좋은 조건은 아닙니다. 저는 논바이너리이고, 트랜스젠더이고, 게다가 연애를 하지 않고 섹스를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성친구’ 이야기나 연예계 가십, 그들이 하는 특정한 게임들, 축구, 예능, 비퀴어 남성들이 주로 보는 유튜브, 비퀴어 남성들이 주로 관심가지는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 틈바구니에 자리가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매번 제가 다른 주제로 리드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식사 자리에 매번 따라가봐야 제가 주제가 손에 꼽히고, 하는 말은 일주일에 한마디면 많은 편이고, 나오는 대화는 이렇다면 말이죠.

 

- 주제: 탈모 / 내용: 탈모 샴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각종 건강식품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약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마침내는 이런 이야기로 끝맺는다. 여성호르몬을 맞으면 머리가 난대! 근데 그러면 여자가 된대!

 

사실 밥을 먹는데서 주제가 이런 실정이다 보니, 식사 자리나 여타 우르르 몰려다니며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 비남성인 과정생들은 빠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논바이너리로서, 자연스럽게 빠질 수밖에 없겠죠.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이 뼈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친목관계가 밤까지 이어져서, 이들끼리 술자리를 가지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협력할 사람을 찾고, 학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모두 제가 부재한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모든 절차가 이렇게 이루어지기만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쌓이기 시작한 다수의 남성그룹과 나머지 비남성그룹 사이의 갭은 점점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비남성끼리 뭉친다고 무언가가 해결될 정도로 머릿수가 있거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학위를 중도포기하길 고려하거나, 실제로 포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과정에서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의 아침은 무기력에 저항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정신과 약을 털어 넣고 간신히 일어나 출근을 합니다. 이따금 저는 연구실에서 호르몬 주사를 맞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미 저에 대한 흥미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출근할 아무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은 말했던가요? 저는 공황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고, 게다가 집에는 전파가 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제게 메신저로 연락을 보내기 보다는 제가 있는 단톡방에서 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무시와 고립 속에서, 교수님은 저를 가르칠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학생들과 지내라.’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할 , 막상 실질적인 피드백은 없었고, 학생들도 그런 피드백들은 교수가 아니라 선배들에게 배우는 연구실 분위기에서 선배가 없는 저는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독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연구원들에게 다가가는 것마저도 두려웠고, 사소한 말을 하는 , 질문을 하는 것도 두려워했습니다. 단톡방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한 기억이나, 대놓고 무시당한 경험, 이를테면 식사 자리에서 공지를 하는 바람에 저만 중요한 공지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만 임시 휴일에 학교에 나오는 우스운 같은 걸 당했으니 말입니다.

 

앞서 밝혔듯 저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명사와 관련된 문제는 한국어에서는 다행히 발생하지 않습니다. 각종 서류를 작성할 때는 법적 성별을 따르고, 화장실을 갈 때도 그냥 법적 성별을 따릅니다. 그날의 겉보기가 어떻든 상관없이 그저 관성적으로, 모두가 나를 성별이라 믿기 때문에, 저는 화장실에 갑니다. 이것은 출장을 갔을 때도 항상 유지되는 기조입니다. 때문에 신입생이나 외부인, 혹은 학회에서 저를 처음 사람들이 저를 화장실에서 마주치고 놀라는 광경을 한두 번 것은 아니나, 근처에 동료가 있으면 놀란 상대를 안심시켜줍니다.

 

과정에서 제가 화장실에, 혹은 저를 특정 성별로 지칭하는 데서 느끼는 불쾌감, 위화감 같은 것은 이미 익숙한지가 오래 되어서 별일이 아닙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거대한 폭력의 경험으로 알려진 디스포리아[*편집자 주: 젠더 디스포리아(gender dysphoria, 성별 불쾌감)은 출생 시 지정된 신체적인 성별이나 성 역할에 대한 불쾌감을 뜻합니다]나 성별에 대한 불쾌함은 다른 고립 경험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다는 기억입니다. 그저 제가 비밀을 품고 있고, 다른 존재이기에 밀려나고, 밀려났기에 재차 밀려나 고립된 경험에 비하면 말이죠.

 

누구도 저를 대놓고 배제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한들 그들은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습니다. 그것도 손에 꼽힐 정도의 경험일 뿐이고요. 누구도 대단한 악의는 없었겠지만, 한번 밀려나기 시작한 저는 끝없이 밀려나고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제가 성소수자라서만 겪는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다른 어떤 사유로든, 무리에 끼지 못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리고 연구실을 떠나서도 지탱해줄 지지 기반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과정에서 책임이 있을 사람들은 모두 방관만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었습니다.

 

학계가 바라는 인재는 ‘정상적’인 존재라서 ‘정상적’인 사람들과 ‘정상적’인 대화 주제를 가지고 편히 교류할 있는 사람, 뿐인 것이었을까요? 저는 결국 고립에 지쳐 과정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고 있지만, 학문, 연구에 대한 갈망, 발견과 문제 해결에 대한 기쁨을 찾을 때마다 잠시 비참한 기분이 스쳐 지나가고는 합니다. 저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자책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저 같은 불청객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저일까요, 다른사람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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